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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한스타일 | 2015.07.22 20:11 | 조회 1151 | 추천 1
신이 한민족에 내린 ‘영험’ 세계로 뿌리뻗자
인삼은 신의 점지를 거쳐야 주어지며
착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신이 내린 신초’
그 상징성의 깊이만큼이나
고급브랜드화, 세계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한겨레
한겨레원형질 민족문화상징 100

인삼


1764년 일본인 사카우에 노보루는 조선 인삼을 경작한 기록을 남겼다. 〈조선인삼경작기〉란 책자가 그것인데, 종자채취·토양선정·해충 예방법·뿌리의 형상과 구별 등을 도해를 곁들여 서술했다. 조선 인삼을 만주 인삼과 비교해 그림으로 설명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우리 인삼 재배기술을 빼낸 셈인데, 지금으로 치면 저작권을 슬쩍한 국제적 문화벤처라고나 할까. 에도 바쿠후는 조선 인삼 수입의 대가로 지불하는 은의 유출을 줄이기 위해 재배기술을 들여오려고 무진 애를 썼다. 밀정도 보낼 정도였으니 조선 인삼이 동아시아 국제거래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음을 말해준다.


인삼은 멀리 오키나와까지 수출됐다. 중국 부자들은 조선 인삼이라면 거침없이 큰돈을 썼다. 심지어 오늘날 중국은 백두산에 인삼을 재배하면서 ‘장백산인삼’이란 이름으로 브랜드화를 꾀하고, 일찍이 중국 의학 기록에 1700여년 전부터 등장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인삼집결지 홍콩시장에서 중국 삼은 우리 삼에 비해 10분의 1 가격이다. 인삼 종주국 한국의 지위는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인삼도 쏟아지고, 한국 인삼보다 오히려 좋다는 흑색선전까지 난무하고 있다. 중국 쪽 물량공세도 무섭다. 이땅의 재배 면적으로는 이런 물량공세를 당해낼 수 없다. 문제는 질이며 고급브랜드화다. 최고 인삼이라도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없으니 우리가 인삼의 세계화에 정말 온몸을 던졌는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인삼이 흔해졌다. 백화점 매대나 시장 좌판에도 넘쳐 흐른다. 오늘날처럼 인삼을 많이 마주치던 시절도 없었다. 요사이는 기르는 인삼과 캐는 산삼을 구분하지만 옛날엔 산삼이 곧 인삼이었다. 재배 인삼이 쏟아져 대중화한 반면, 인삼의 신성성은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인삼은 신이 내린 신초(神草)다. 좀처럼 눈에 띄질 않는다. 그래서 심메마니(심마니)는 산삼 캐기를 신성공간에 몰입하는 수도승같이 수행한다. 부모의 중병을 고치려고 눈 덮인 산골을 헤매는데 산신령이 산삼 한뿌리를 주어 병을 고쳤다는 식의 효 사상과 결부된 보은담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만큼 인삼은 신의 점지를 거쳐야 주어지며 착한 사람에게만 돌아간다. 산신령 그림의 소도구에 늘 인삼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인삼에 관한 한 녹용과 더불어 신앙 이상의 항심을 품고 살아간다. 삼계탕에서 1년산도 못 되는 인삼 잔뿌리라도 발견하면 왠지 정력이 뻗칠 것만 같은 생각에 젖는다. 인삼차, 정관장, 홍삼, 인삼김치에 이르기까지 상품들은 다양하다. 신성성에 기댄 신초로서의 정직성을 더불어 회복한다면, 상징성의 깊이만큼이나 고급브랜드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재배인삼이 무한공급되는 시대지만 인삼의 상징성 속에 담긴 그윽한 뿌리와 비밀스런 출현담을 기억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동의보감〉에 이르기를, 사람 모양을 닮은 인삼을 좀더 격이 높은 것으로 쳤으니, 바다에 해삼이 있다면 땅에는 사람 닮은 인삼이 있는 격이다. 식물 뿌리가 사람을 닮았다? 유감주술의 힘에 의탁하는 오랜 영험성이 아닐 수 없다.


주강현 한국민속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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