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기억

한복의 기억

부산일보| 기사입력 2014-01-11 08:59 | 최종수정 2014-01-13 08:07 기사원문

나는 어렸을 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 그 교회는 우리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교회에서 노래하면서 율동하는 것이 좋았다. 충주에서 가끔 올라오시던 할머니가 노래를 하라고 하시면 언제나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노래를 다른 친구들보다 특별히 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교회 선생님의 주목을 받은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어느 해인가 크리스마스 때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을 준비했는데, 한복을 입고 한다고 했다. 나는 한복이 없었다. 그래서 슬며시 공연에 빠졌고, 이후로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께 한복이 필요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1960~70년대 대개의 가정처럼 별로 여유가 없었다. 서울 변두리 빈촌에는 우리 집보다 더 어려운 집이 많았다. 다들 그런 형편이니 내가 한복이 없는 것쯤은 당연하게 여겼다.

어릴 때 한복 없어 공연 못했지 

그 덕에 아이들 공연 보면 황홀

그러고 난 이후에도, 당시로선 신기하기만 한 TV에서 또래 친구들이 예쁜 한복을 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면 내심 부러웠다. 그렇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노래하고 '노는' 것은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일처럼 보였고,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어른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심각한 얼굴로 책을 대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대학까지 책을 가까이 하며 졸업했다.

이런저런 공부를 하던 중 전통문화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의지가 생겼고 우연한 기회에 영롱한 가야금 소리를 듣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국악이론을 전공하게 되었다.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속에서 오랫동안 숨어 있다가 겨우 밖으로 숨쉴 곳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국악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거의 매일 연주하고 춤추는 이들에 둘러싸여 있다. 어린 시절 부러워했던 대상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우리 단원들은 타고난 예술적인 재능을 가지고 그것을 잘 다듬어 온 전문적인 예술가들이다. 물론 나도 국악이론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음악과 춤을 배워 보기도 했다. 특히 거문고를 여러 해 배웠는데 자세가 나빴는지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겼다. 이래저래 이제는 내가 연주하고 춤추는 것보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보는 게 더 편안하고 좋다.

어렸을 때 한복이 있었다면 크리스마스 공연에 참여했겠지. 그 다음은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내게는 춤추고 노래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연주하거나 춤추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지난해 국립부산국악원에서 한국 전통형 엘시스테마 특성화 사업으로 어린이풍물단을 운영했다. 오색 풍물 복식을 갖춘 아이들이 부산농악의 젊은 이수자 선생님에게 사물과 상모, 태평소를 배우는 모습이 참 예뻤다. 엘시스테마 특성화 사업은 아동들에게 예술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인데 우리는 학교에 운동장이 없는 가남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다.

이 학생들이 지난해 12월 7일 남원의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열린 성과 발표회에 참여하고 왔다. 한 3학년 학생이 참가 감상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힘들기는 했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이날이 제일 좋은 날이었다. 이제 6학년 언니들이 가니깐 슬프다. 하지만 우리가 다 같이 함께하면 되니깐 정말 기쁘다. 다음 공연에도 열심히 파이팅!' 지금 생각하면 내가 옛날 한복이 없어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지 못했던 그 '안타까운 경험'이 오히려 내게 유익한 것 같다. 이 어린이의 마음을 마저 알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