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
동지섣달 아랫목 같은 기억 속의 그 집 | |
한겨레원형질 민족문화상징 100 (17) 주생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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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지붕 아래 온돌 위에…‘바람부는 섬’ 돌담 안에… 한국인들은 돌 위에서 산다. 세계 최대의 고인돌 왕국인 한국은 난방도 돌을 데워서 했다. 좌식 생활에서 온돌과 같은 난방 방식은 매우 자연스럽고 효율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온돌은 이 땅에만 있는 독특한 난방 방식이다. 같은 좌식 생활을 해도 일본에는 온돌이 없다. 그나마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중국의 ‘캉’인데, 이것은 방 한쪽에 쌓은 침상 부분에만 불을 때는 쪽구들이다. 좌식생활 문화권은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몽골과 아랍 지역의 유목민들에게서 발견된다. 바닥에 앉아 생활하기 위해서는 땅바닥의 거?s과 냉기를 차단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랍에서 카펫이 발달하고 일본이 다다미를 발명했다면, 우리는 전통적으로 흙바닥 위에 멍석이나 장판을 깔았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방바닥 아래에 구들을 놓고 불을 지펴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했던 것이다. 아마도 유명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이걸 알았더라면 분명 ‘날것’과 ‘익힌 것’이라는 그 특유의 논리를 음식만 아니라 주거에도 적용하려고 들지 않았을까. 온돌은 윗목과 아랫목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만들어내었다. 그것은 엉덩이와 등짝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질서였으며 온기를 매개로 한 일종의 ‘스킨십’ 문화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감각은 오늘날 ‘찜질방 러시’로 이어지고 있다. 비록 요즘에는 구들장 대신에 파이프를 까는 보일러 방식으로 바뀌긴 했지만 바닥 난방은 여전히 우리의 겨울을 나게 하는 주된 기술이며 외국에 수출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전통이 현대적인 기술과 생활에 적용하여 변용되어온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와집이 반가(班家)를 상징한다면 초가집은 민가나 농가를 대표한다. 확실히 초가집은 민초를 닮았다. 흔히 한국의 산등성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평가되는 초가지붕의 선은 그 자체로 우리의 농촌 풍경이었다. 게다가 벼를 수확하고 남은 볏짚을 쌓아 지붕으로 얹는 초가집은 요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부러운 생태순환적인 주거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초가집은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거의 사라져 버렸고 오늘날에는 몇 군데의 민속마을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대신에 이제 초가집은 유리 끼운 액자 속에 들어가, 어미 젖을 빠는 돼지 그림이나 ‘가화만사성’이라는 휘호와 함께 우리의 거실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액자에도 먼지가 쌓여간다. 아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말을 쓰는 것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초가집을 둘러치는 것으로는 돌담이나 싸리울이 제격이다. 얼마 전 문화재청에서 전국의 돌담길 몇 군데를 문화재로 지정하였는데, 그 중에는 제주도의 돌담도 포함되어 있다. 적당히 대충 쌓은 것 같은 돌담이지만 제주의 강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이 바람을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바람 든 돌인 것이다. 초가지붕과 돌담과 밭고랑과 푸른 바다가 겹쳐지면 제주도의 풍경은 완성된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건축가 황두진이 우리 시대의 명작에 주목해야 한다고 아무리 역설해도 나는 전통 건축 앞에만 서면 자괴감을 느낀다. 저렇게 아름다운 건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열등감 때문에. 물론 수백, 수천 년의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온 전통 건축의 내공과 불과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현대 건축의 그것을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에는 커다란 단절이 존재한다. 그러한 단절은 우리의 삶 곳곳에서 발견된다.
흔히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문화라는 기준으로 볼 때 집은 어디쯤에 해당할까. 집은 건강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 문화적 건강의 척도가 되는 집. 그러므로 집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지 않을까. 과연 우리 시대에 집은 있는가. 하필 지금 부동산 광풍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가격이 오르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집은 없다, 부동산만 있을 뿐. 부동산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문화적 총체성으로서의 집을 우리는 잃어버렸다. 이런 시대에 과거의 주거 형태인 한옥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한옥을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하나는 특정한 형태의 역사적 건축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풍토에 적합한 건축의 보편적 모델로 이해하는 것이다. 전자의 의미를 띤 한옥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후자의 의미를 지닌 한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주거문화는 위기다. 한옥은 분명 선조들이 남긴 뛰어난 문화유산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한옥의 의미는 단지 그 점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의 건축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로서 엄연히 살아 있다. 한옥은 우리 민족에게 집의 원형(原型)이고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옥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면 삶과 가치가 달라지는 법. 그러므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한옥의 본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한복과 마찬가지로 한옥도 이제 형태를 통한 지속은 불가능한 시점에 왔다. 과거 군사정권은 한옥을 형태적 차원에서 모방함으로써 민족적 정통성을 살리려고 애썼지만, 많은 건축가들은 한옥의 본질을 다른 각도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는 공간의 개방성에서 찾고 몇몇 건축가들은 한옥의 핵심적인 공간으로 마당을 주목하기도 했다. 또 어떤 건축가는 한옥 특유의 ‘채 나눔’에 주목하여 자신의 설계 논리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아파트가 주거의 대세가 된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한옥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사적 형태로서의 한옥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생활과 풍토에 적합한 건축을 가리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아파트의 시대라 할지라도 우리 집의 원형으로서 한옥의 의미는 결코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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