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문화유산 아시아 최다보유국 한국

 

올해 5월 우리나라 기록문화에 겹경사가 있었다.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서 약탈됐던 조선왕조의궤 297권이 5월 27일로 모두 돌아왔고, 25일에는 일성록과 5.18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1997), 직지심체요절과 승정원일기(2001), 고려대장경판과 제경판과 조선왕조의궤(2007), 동의보감(2009)에 이은 9번째 선정. 우리나라는 세계기록문화유산 아시아 최다보유국이 됐다.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책은 뭘까? 구텐베르크의 ‘성경’(1455)? 아니다. 기록상 세계 최고(最古)는 ‘상정고금예문’(1234)이며, 현존하는 세계 최고본은 ‘직지심체요절’(1372)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도 우라나라의 ‘무구정광다라니경’(751)이다. 활자와 인쇄술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최초이면서 최고라는 타이틀을 나란히 거머쥐고 있다.  

왕조에 대한 기록 역시 독보적이다. 우리나라는 고려왕조실록과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남아있다. 실록은 왕의 곁에서 사관(史官)이 그림자처럼 살피며 기록을 남기되 왕조차 그 글을 보지 못하고 왕의 사후에야 내용을 책으로 집필해 공개하는 철저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보관도 철저했다. 조선의 기록을 보면, 궁에 보관하는 원본 외에도 3개의 복본을 만들어 충주·전주·성주 세 곳에 나누어 보관토록 했다. 이중 충주와 성주사고(史庫)는 임진왜란 때 불탔다. 만일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면 조선의 기록은 이때 모두 사라졌을 터다. 임란 이후, 실록은 마니산ㆍ오대산ㆍ태백산ㆍ묘향산 등 사람 손이 타지 않는 더 깊은 산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세계최다 기록문화유산 보유국은 독일이다. 구텐베르크의 성경, 벤츠 설계도, 베토벤의 악보, 라이프니츠의 문서, 베를린 장벽 붕괴에 관한 기록, 실린더 레코딩 음악(1893-1952) 등 13가지가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다. 목록만 봐도 기록 자체의 우수성보다는 문화사적 의미를 인정 받은 것들이다.  

직지심경이 구텐베르크보다 백여년 전에 만들어지고, 세계가 감탄하는 기록문화체계가 있음에도 독일이 우리보다 이름을 날리며 앞서 가는 이유. 그것은 우리조차 우리 문화를 잘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해서는 아닌지. 우리 문화는 먼곳에 있지않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 가면 지금도 직지심경을 볼 수 있고, 규장각ㆍ존경각ㆍ문화재청의 홈페이지를 통해 기록문화유산을 집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걸음 더 다가갈수록 우리는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