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보천교
일제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보천교
조선일보사에서 발간한 <조선일보 항일기사 색인-1920~1940->에 나타난 항일기사 건수의 통계를 통해 당시 일간지와 월간지에 나타난 보천교 관련 기사를 분석해 보면, 적어도 1925년 이전의 보천교의 활동은 국권회복을 위한 운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천교의 항일운동과 기타 종교와의 비교
기독교의 항일기사 건수 총계가 23건 천주교 2건, 불교 18건, 유교 15건, 천도교 32건 인데 반해 증산 계열 보천교 83건, 태을교 9건, 훔치교 55건으로 총 147건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보천교 하나만 해도 불교나 기독교 항일운동의 4배에 맞먹으며 훔치교만 해도 불교의 3배, 기독교의 2배가 넘고 있는 항일운동 사건을 벌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계종의 초대 종정인 방 한암 스님이 산천중원(山川重遠)으로, 송광사 주지 임 석진이 임원길(林原吉)로 각기 창씨개명하고, 월정사 주지 이 종욱이 광전종욱(廣田鐘郁)으로, 용주사 주지 강 대련이 위원형(謂原馨)으로 창씨 개명한 것에서 보다시피 불교는 종단전체 차원에서 친일하는 것이 전반적인 추세이자 분위기였고, 카톨릭과 기독교 역시 경성기독교 연합회와 교계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신사참배와 친일로 돌아선 것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임원길은 조선총독 미나미의 향응을 받고 남산의 조선신궁에서 엄숙하게 의식을 거행한 바 있으며 신불교 라는 친일지를 발행해 총후보국의 논조를 유지했으며, 강 대련은 [불교총보]에 '불교옹호회와 법려(法侶)의 각오'란 친일성향의 글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일본승을 왕실 및 양반집 여인과의 결혼을 주장하는 '조선불교기관 확장의견서'를 1919년 11월 사이토 총독에게 제출하기도 한 친일 분자였다.
1937년 7월26일 YMCA에서 종교단체 연합 친일 시국강연회가 열렸는데, 불교의 권 상로, 유교의 안 인식, 천도교의 이 돈화, 이종린, 감리교의 양 주삼, 장로교의 전 필순 등이 친일을 위한 사자후를 토했으며, 1938년 5월18일 서울 부미관에서는 <경성기독교 연합회>가 창립되어 "40만 십자군병들아, 다같이 일어나 총후보국의 보조를 맞추자"는 슬로건 아래 내선일체, 신앙 보국을 맹서한 바 있다.
1938년 7월29일, 구세군 최고 사령관 윌슨도 전선각처의 소대장에게 국민의례, 황거요배, 국경일 경축행사 실행을 지사하는 통첩을 내렸으며 이에 의해 황 종률 구세군 전장 서기관은 구세군 1만8천 신도가 앞으로는 단체적으로 신사참배를 할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장로교 역시 1938년 9월10-15일의 평양 서문 밖 예배당에서 열린 제27회 총회에서 첫날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다음의 성명서를 채택했다.
'우리들은 신사가 기독교시에 위반되지 않는 본지(本旨)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대국적으로 보아 국가의 의식인 것을 지각하고, 이에 신사참배를 선서함. 신사참배를 솔선하여 이행하며, 더 나아가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에 참가하여, 시국하의 총후 황국신민으로서의 적성(赤誠)을 다하기를 기함'
이 결의에 의해 동년 12월 12일 감리교의 양 주삼, 김 종우, 성결교의 이 명식, 장로교의 홍 택기, 김 길창 등 조선을 대표한 기독교계 지도급 교역자 5명의 신궁 참배단이 결성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이세(伊勢)신궁, 가시와라(檀原)신궁, 메이지(明治)신궁, 야스쿠니(靖國)신궁 및 모모야마 황릉(桃山宗陵)등을 참배했다.
일제시대에는 특히 '공인종교(公認宗敎)'라 하여 일본의 전통적 신도(神道), 교단적인 차원에서 창씨개명과 친일노선을 공식화 한 불교, 기독교만을 공식적 종교라고 인정했었다.
그러므로 이외의 새로운 종교들은 비슷한 종교 즉 유사종교가 될 수밖에 없었고 당시 가장 막강한 반일 민족종교 보천교는 유례없는 "보천교 신법"까지 만들어 탄압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앞에서 본 통계와 같이 보천교의 가장 활발한 147건 항일기사는 (기독교 23건, 불교 18건, 천주교 2건, 유교 15건) 친일로 돌아선 여느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보천교가 그만큼 가장 활발하게 항일운동을 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일본은 유일하게 친일적이지 않은 민족 자생종교 보천교를 조선의 종교단체를 마음대로 억압하고 요리하는 하나의 샘플로 삼았는데, 이러한 사실을 밝혀주는 자료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특히 통감부령 제45호 '종교의 포교에 관한 부칙'은 일본 내지(內地) 신도(神道)와 불교, 기독교만을 종교로 인정하고 나머지 민족종교는 근본 속성을 정치적 결사체로 보아 철저한 탄압을 가했다.
당시 650만 신도를 가진 조선 최대의 종교단체가 공개단체도 아닌 비밀단체인데다 여타의 종교처럼 친일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가장 큰 독립운동 자금원인 것을 알고 있는 일제로서는 이 비밀 단체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 내심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제는 종교단체와 사상단체 관리를 위한 방편 상,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 의해 비밀교단의 모습을 공개하도록 유도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간부 이 상호에 의해 <보천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를 계기로 민족종교 탄압책의 일환으로 당시 친일 언론이었던 조선, 동아를 무기 삼아 보천교의 어두운 면 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유사종교화 내지 사이비 종교화 했다.
1936년 3월 주인장(교주 호칭) 차 경석의 사망과 함께 해체되기 전, 당시의 [보천교]는 이미 공개적인 차원에서 친일로 돌아선 국내 여타 종교와는 다르게 국내 종교단체 중 은밀하게 독립운동자금을 대던 가장 막강한 비밀조직이었는데, 조 만식에 의해 시작된 <물산장려운동>의 기관지 [산업계]는 보천교의 기관지 [보광을] 인쇄하는 [보광사]인쇄부에서 인쇄되었다.
이는 보천교 충남 진정원 간부 임 경호와 보천교 경성 진정원 간부 고 용환 그리고 3.1운동과 상해임정에 참여한 바 있는 경성 진정원 부장 주익(朱翼)이 물산장려회 이사로 참여한 사실과 [산업계]의 실제 사무 담당자가 바로 임 경호, 고 용환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보천교의 역할이 <물산장려운동>의 단순한 배후가 아니라 이를 모든 면에서 실저리적으로 주도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고당 조만식, 여운형, 설산 장덕수, 고하 송진우, 조병욱, 설태희, 안재홍 등 적지 않은 독립운동가 및 사회운동가들이 비밀리에 보천교를 내왕하며 독립운동 자금과 사회운동 자금을 제공받았으며 그 중 일부는 직접 입교하여 신도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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