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비빔밥
전주비빔밥, ‘완전’을 향한 정성의 맛·멋 | |
‘완벽’을 꿈꾸는 전주 비빔밥에서도 ‘대충’ 용납못해 색상까지 고려한 조리법 투철한 장인의식마저 느껴져 | |
한겨레원형질 민족문화상징 100 전북의 고도 전주는 ‘완전’을 꿈꾸어왔다. 옛 이름 ‘완산주’의 첫 글자와 현 이름의 첫 글자 모두가 온전함 혹은 완벽함을 뜻하며 그것을 모으면 ‘완전’이 된다. 애초에 도시를 만들어 나가면서 사방에 신령스러운 네 동물, 기린과 봉황, 용, 그리고 거북을 배치한 것에서도 이 꿈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선사시대만의 얘기가 아니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이 도시의 동서남북에는 이를 굳게 지켜줄 절(固寺)이 자리를 하게 되며, 근래에 이르러 기독교가 자리를 잡으면서는 또다시 수호의 동, 서, 남, 북문 교회가 세워진다. 재난을 막아 ‘완전의 땅’으로 만들려는 기획으로 볼 수밖에 없는 예들이다. 지금도 전주에서는 ‘완전’을 꿈꾼다. 판소리나 산조가 예술적 완벽성을 꾀하는 것도 전주에서의 일이다. 온전한 몸을 위하여 한방이 성하고 한지공예가 공예 이상을 꿈꾸며 비상하려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전통문화를 가지고 고민을 하는 것도, 생태와 환경 그리고 삶의 질까지를 함께 아우르는 대안적 삶, 공동체를 상실하면서 잃어버린 온전한 삶의 형태를 되살리려는 노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 전형적인 예가 전주비빔밥이다. 비빔밥은 일종의 간편식이다. 궁중에서도 비빔밥은 점심, 혹은 종친들이 입궐했을 때 수라 대신으로 이용했던 가벼운 식사였다. 농번기 농경문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에서도 이러한 특색은 확인되며, 군사문화나 사찰문화, 의례문화 등과 연계된 태생설도 이러한 조리의 편리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전주비빔밥의 특징은 이러한 탄생 배경과 멀리 떨어져 있다. ‘완전’을 꿈꾸는 전주에서는 비빔밥에서도 ‘대충’을 용납하지 못한다. 적어도 조리과정에서는 그렇다. 1968년 당시 문화공보부에서 조사한 전주비빔밥 조리법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물이 아닌 사골국물에 밥을 짓는 것이나 밥이 한 물 넘으면 콩나물을 넣고 뜸을 들인 뒤 따뜻할 때 참기름으로 무친다는 대목에서도 조리의 간편성과는 거리가 먼 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 숙주나 미나리, 고사리 등도 나름의 특성을 살려 각기 따로 조리하며 색상까지 고려하여 노란 청포묵과 오방색의 화려한 고명을 고집하는 데서는 투철한 장인의식마저 느끼게 된다. 핵심은 정성이다. 철분이 풍부한 전주콩나물만 고집하는 등 조리 재료의 선택에서도 ‘완전’을 향한 정성은 확인된다. 최근 들어 색깔별로 나물을 배치한 뒤 중앙에 빨간 고추장을 떠놓고 그 위를 달걀 노른자로 장식하는 모습은 화룡점정의 숙연함까지 느끼게 해준다.
요즘 비행기 기내식으로 각광을 받는 것이나, 1000인분, 2002인분 비비기 등 행사용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서도 전주비빔밥의 밝은 미래는 엿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중국에서 열린 세계미식대회에서 비중국요리부문 최고상을 전주비빔밥이 거머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완전’을 향한 정성의 비빔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여 정성이 생략된 산업화나 섣부른 세계화는 피해가야 할 것이다. 이종민 전북대 교수 삼계탕·떡·불고기… 순자연적 지혜로 빚은 융합의 백미 “현대는 융합의 시대다.” 융합의 요체는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요 미지의 ‘푸른 바다’(블루오션)를 열어가는 것이다. 융합의 백미는 우리 ‘국물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숟가락을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국물문화족’이다. 그런데 이 융합에도 철학과 원칙은 필요하다. 얼치기 퓨전음악과 같은 뒤범벅을 피하기 위해서다. 서로 해치지 않고 상생의 조화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을 섞어야 ‘푸른 바다’로도 나갈 수 있다. 이런 거듭남의 탁월한 예가 삼계탕이다. 따뜻한 성질의 닭에 인삼·대추·녹각·마늘·찹쌀 등을 넣고 푹 고아 우러난(거듭난) 국물에 이 보양식의 묘미가 있다. 이 국물에 더위로 허해진 몸을 보할 수 있는 단백질을 비롯한 영양소가 함께 녹아 있다. 몸에 좋다고 아무 약재나 넣어서는 맛도 텁텁해질 뿐 아니라 허증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몸은 여름철이 되면 피부 쪽 혈관이 확장되어 혈류량이 늘어나면서 체온을 조절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위나 장 등 몸속 장기들은 상대적으로 차가워진다. 이때 더위를 식힌다고 찬 음식을 먹게 되면 배탈 설사를 동반할 수 있다. 더위를 오히려 더운 음식으로 다스리는 순응 아니면 역설의 지혜! 삼계탕에서 취해야 할 게 보양의 영양만이 아닌 것이다. 떡 또한 융합으로 빚어낸 우리 민족 최고의 별식이다. 육식을 멀리하고 차를 즐기는 음다 풍속의 유행과 연관된 떡 문화는 쌀에 조·수수·콩·보리 등 여러 잡곡류를 섞어, 분명 쌀을 아끼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눈여겨볼 것은 여러 조합을 통하여 매우 다양한 종류의 떡을 창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융합 혹은 퓨전을 통해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일을 우리의 떡이 일찍이 선보인 것이다. 또 하나, “남의 떡에 설 쇤다”든가 “얻은 떡이 두레 반이다” 등의 속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떡에 서려 있는 정을 나누는 풍속도 주목할 일이다. ‘밥 위의 떡’으로 누구나 반기는 별식이지만 자기(식구)만을 위해 떡을 하는 일은 없다. 햄버거나 피자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불고기는 삼계탕, 김치, 비빔밥 등과 더불어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표적 한국음식이다. 이 또한 고기를 얇게 저며 간장·파·깨소금·후추·설탕 등 다양한 채소와 양념에 재웠다가 구워낸 것으로 융합을 통해 새롭게 탄생시킨 요리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육식을 즐기는 외국인들이, 갑자기 그것에 눈을 뜬 민족이 자연의 섭리를 살피며 빚어낸 색다른 ‘퓨전음식’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도 채소를 곁들여 먹게 함으로써 육식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순자연적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불고기 또한, 비록 그 탄생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려는 우리 민족 특유의, 디엔에이와 같이 변함없는 기질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해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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